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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옹기에 사랑담아 행복 빚는 독짓는 5부자(레이디 경향)
제목 [옹기] 옹기에 사랑담아 행복 빚는 독짓는 5부자(레이디 경향)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218.39.149.234)
  • 작성일 2005-05-02 00: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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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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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에 사랑담아 행복 빚는 독짓는 5부자
7대째 가업! 옹기에 사랑 담아 행복을 빚는 독짓는 오부자
“옛것에만 매달리는 아버지가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의 손을 닮고자 합니다”

남들은 힘들다고 그만두거나 피해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가족이 있다. 7대째 전통 옹기만을 고집하며 외길을 걷고 있는 경기도 이천의 옹기 빚는 오부자가 그들. 사람들은 바보 같다 하찮게 여기는 삶이지만 이들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기에 더욱 값지다 말한다.
신체사이즈에 따라 높이가 다른 물레 다섯 개

국내에서 가장 크고 동시에 가장 오래된 전통가마가 있는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이포 2리 산 13번지. 옹기기능보유자 김일만(62)씨가 네 아들과 함께 옹기를 빚고 있는 곳이다. ‘오부자옹기’라는 커다란 표지판을 따라 작업장으로 들어서면 전통가마를 둘러쌓고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가장 힘이 좋아 보이는 젊은 청년은 뗄감으로 사용할 소나무 껍질을 벗기느라 여념이 없고, 물레를 돌리며 옹기를 성형하는 노인장의 손놀림에선 장인의 기품이 물씬 묻어난다.
한쪽에선 재료의 질이 품질을 좌우한다며 까다롭게 점토를 골라내는데 또 한쪽에선 멀리 영국에서부터 찾아온 큐레이터에게 한국의 전통 옹기를 소개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전통 옹기 분야의 경기도 무형문화재인 옹기장 김일만씨가 아들대까지 7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삶의 터전, 오부자 옹기 가마터의 모습은 이랬다.
이들의 가족사는 우리나라 옹기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가마에 불을 지피고 옹기를 구워내길 200여년째 이어가고 있는 이들. 조선시대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절, 천주교인들은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몸을 은신하며 생계유지 수단으로 옹기나 질그릇을 굽기 시작하였다. 김일만씨 집안도 그 경우에 속한다. 김일만씨가 여주에 정착하여 옹기를 굽기 시작한 건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 당시만 해도 이 지방은 이포나루 수로를 통해 생산된 옹기를 서울로 직접 배달, 옹기 고장으로 호황을 누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플라스틱 그릇이 널리 보급되며 여주의 많은 옹기가마터는 소멸해 갔고 지금은 장남인 김일만씨와 그의 네 아들들, 이렇게 5부자만이 이곳에 남아 옹기를 구워내고 있다.
50여년을 옹기 제작에 몸바쳐온 아버지 김일만씨. 그는 “힘에 부친다” 말하면서도 그 고된 일을 네 아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재주가 없어서” 란다. 6대째 물려 내려온 일이다 보니 조상들이 고생해 이뤄 놓은 일을 나몰라라하지 못했던 것. 하지만 성호(40), 정호(37), 창호(34), 용호(28)씨 네 형제는 아버지와는 상황이 달랐다. 사실 김일만씨의 4남 모두가 처음부터 전통옹기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셋째 창호씨와 넷째 용호씨는 한때 무작정 상경해 방황을 하기도 했다. 가볍고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그릇과 양은 그릇이 널린 세상에서 무겁고 시커먼 옹기를 고집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가난과의 계속되는 투쟁에도 신물이 났다. 이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무런 미래에 대한 전망도, 발전 가능성도 없는 옹기를 만드는 것은 한 번 뿐인 인생의 무덤을 파는 것이란 생각에 괴로웠다 털어놓는다.
배곯는 일임을 알면서도 옹기를 고집하는 이유

지금은 이들의 옹기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그런 대로 생활이 나아졌지만 대부분의 장인들이 그렇듯 한때는 가난 때문에 가족 해체의 위기에까지 몰리기도 했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아내와 네 자녀를 두고 군대에 갔던 김일만씨가 휴가를 나왔다가 비참한 가족들의 생활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가족 모두를 데리고 귀대를 한 일까지 있었을 정도다.
“당시 아버지의 군 상사가 너무 놀라며 ‘아니, 휴가를 보내 줬더니만 이렇게 가족들을 다 끌고 귀대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막 호통을 치더래요. 지금 같으면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저희 4형제가 이렇게 모두 힘이 장사 같은 건 아무래도 짠밥의 위력이 아닐까…(웃음) 우리들은 아버지의 군 상사 도움으로 부대 앞에 조그만 민가를 얻어 부대에서 남은 짠밥으로 끼니를 이어가며 생활을 꾸려 갔어요.”

장남 김성호씨의 회고담이다. 김일만씨는 이런 어려운 가정 형편이 알려지면서 만기 제대를 1년 앞두고 의가사 제대를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7대째 가업을 잇기란 더더욱 쉽지 않았다. 생활방식이 서구화되면서 옹기에도 기계화 바람이 불어 너나 할 것 없이 가스가마를 도입, 기계틀로 옹기를 찍어서 대량생산에 나서기 시작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통적인 방법으로 발 물레를 돌려 옹기를 만들고 나무로 장작가마를 때는 김일만씨 가족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 밖에 없었다. 생활비 마련은커녕 급기야는 빚에 쫒기는 상황에까지 이르자 김일만씨의 아내는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년 땔 나무가 화재로 인해 모두 불에 타버리는 사태까지 겪어야 했다. 그야말로 옹기점의 문을 닫느냐 마느냐는 절박한 기로에 선 상황. 아버지 김일만씨는 ‘네 아들 모두를 옹기장이로 키웠는데’ 탄식하며 자식들의 앞날을 자신이 다 망쳐놓았다는 생각에 큰 아들 성호씨를 붙들고 펑펑 눈물을 쏟아냈단다. 하지만 김일만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무덤을 옹기가마가 보이는 산언덕에 세워달라셨던 아버지. 옹기가마 위에서 자신을 보고 계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는 마음을 다잡아 나갔다.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이 일은 힘이 들고 돈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이 일을 해야 한다. 온 식구들이 힘을 모아 일해 나간다면 언젠간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김일만씨 가족에게도 광명은 찾아왔다. 이들 가족의 외길 인생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며 지난 1996년 김일만씨가 기능전승자로 인정 받은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선정, 국가로부터 산업포상을 받게 된 것. 가난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지만 한 우물을 판 보람이 전혀 없진 않았던 셈이다. 일본에서 수학여행을 올 정도로 ‘오부자옹기’는 명물이 됐다. 입소문이 퍼져나가며 요즘은 주문생산도 하고 있다. 하지만 옹기가 돈벌이가 못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김일만씨 아들들이 한 달을 꼬박 일한 대가로 손에 쥐는 돈은 30만원이 고작. 혼자 몸이라면 또 모를까 막내아들까지 결혼을 한 상황에 이 정도론 입에 풀칠조차 하기 힘들다.
때문에 이들 형제들은 옹기 일을 하는 틈틈이 막노동을 병행하며 생활해 나가고 있다. 둘째 정호씨가 고향을 떠나 인천의 현대식 옹기 공장으로 터전을 옮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정호씨는 아버지의 대를 잇겠다는 더욱 큰 꿈을 위해 잠시 전통에 대한 고집을 꺽기로 했다. 고향 가마터에선 60-70%만 를 구워내도 얼씨구나 좋아 잠을 설치기 일쑤였는데 그가 일하는 인천 공장에선 단 1%도 실패란 없다. 일도 고향에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수월치만 월급은 형, 동생들에 비해 여덟 배나 많은 상태. 하지만 정호씨는 지금도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
“생활이 안되니까 어쩔 수 없이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거지 지금도 마음은 굴뚝같아요. 돈 벌면 고향으로 돌아가야죠. 예전에는 4형제 중에 제가 최고로 기술이 좋았는데 요즘은 한번씩 고향에 내려가면 동생들보다도 못한 것 같아 얼마나 속상한 지 모르겠어요. 우리 고향집 옹기에선 깊은 맛이 느껴져요. 전 옹기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집에서 사용하는 옹기만은 꼭 이천 집에서 손수 만들어다 쓰는 걸요?”
바보로 살아 얻은 선물은 ‘선생님’이란 호칭!

이렇게 답답하고, 바보 같은 사람들이 또 있을까? 빠르고, 쉬운 길을 찾기에 바쁜 요즘 사람들의 시각에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성호, 정호씨는 그나마 빨리 마음을 잡아 올해로 벌써 옹기제작 경력 25년째. 하지만 창호, 용호씨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만큼 전통방식만을 고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이 걸렸다 털어놓는다.
“‘남들처럼 가스가마도 놓고 잘 팔리도록 광명단도 넣어 반짝거리는 항아리를 만들면 일도 이렇게 고되지 않고 좋을 텐데…’ 저희라고 왜 답답하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사춘기 시절에는 아버지에게 대들기도 많이 했어요. 형들은 옹기 때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왔죠 그나마 저희는 고등학교까진 마쳤지만 한창 공부할 때 나무 자르기와 흑 빻기 등 집안 일이 너무 많아 방학 때도 놀러갈 생각 한번 하지 못하고 컸어요. 단지 집안 일이라고 이 일을 하기엔 제 청춘이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가수가 되고 싶었던 창호씨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무작정 상경해 막노동을 하며 음악학원이나 요리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년도 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 물레 앞에 앉았다. 하루 일을 끝내고 지하철 신문합숙소에서 새우잠을 잘 때면 그 힘든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물레를 돌리고 있을 아버지와 형님, 동생이 떠올랐고 물레 위에서 그릇을 빚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아른거려 괴로웠단다. 안산 공장으로의 탈출을 시도했던 막내 용호씨도 결과는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창호씨는 서울서 견학 나온 이대 공예과 출신 여성과 가정을 이뤘다. 그야말로 옹기가 맺어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올해 여주대 도자기공예과에도 입학하는 행운까지 거머 줬다. “옹기를 파야지 무슨 때 늦은 공부냐”던 아버지에게 창호씨는 “가업인 전통옹기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남기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얼마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실시한 ‘기능장려수기작품공모’에 5부자의 애환을 담은 작품 ‘옹기의 길’로 최우수상을 거머쥔 것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그의 첫 작업이었다.
어려서부터 옹기만을 보며 옹기만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제일 잘 하는 일도 옹기를 만드는 일밖에 없다는 이들 4형제. 평생을 흙 냄새만 맡고 살아온 탓에 그 흔한 핸드폰 하나 가지고 있지 않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을 몰라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 일도 곧잘 있지만 이들은 모두 옹기를 만드는 재미와 즐거움에 흠뻑 빠져 산다. 이처럼 한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지만 다른 점도 있다. 성호, 정호, 창호, 용호씨는 외모, 성격 등이 다른 만큼 전공분야도 제각각. 맡형 성호씨는 흙의 배합과 유약의 산지에 대해서라면 박사급이고 둘째 정호씨는 물레 성형에 남다를 재주를 가지고 있다.
셋째 창호씨는 소품과 굴뚝 같은 장식성이 강한 옹기를 만드는 꼼꼼함을 지녔고, 막내 용호씨는 큰 항아리를 만들 수 있는 체력과 근력을 자랑한다. 이들 4형제는 묵묵히 전통의 길을 걷고 있는 부친이 자랑스럽다며 옹기장이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열일곱 살 때 점토를 처음으로 만져본 뒤 40여년만에 무형문화재로 제정, 비로소 옹기명장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아버지 김일만씨. 그는 아직도 “선생님“ 소리가 낯설기만 하다. 옹기를 사러 와서는 발로 항아리를 뚝뚝 차면서 “이게 얼마냐”고 묻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옹기가 예술로 인정받으며 작품으로 대접받는 세상이 됐다. 게다가 아들 4형제는 흙일로 굳은 살이 박혀 고목처럼 거칠어진 자신의 손을 닮고 싶다며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물레를 돌리고 있다.
김일만씨에겐 이제 단 하나의 바람만이 남아 있다. 증조부, 조부, 아버지, 자신이 그랬듯이 손주들도 옹기와 함께 커주길 바랄 뿐이다. 이런 뜻을 알았는지 첫째 아들 김성호씨의 중학생인 쌍둥이 아들은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작업장으로 달려와 옹기 일을 돕겠다 자청하고 있다. 장인의 혼불을 8대째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 그 꿈이 이루어질 날도 머지 않은 듯 싶다.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신규철

   
레이디경향   2003-07-06 18: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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