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칠용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객원논설위원〉
웰빙 붐을 타고 무공해 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 같다. 특히 건강과 직결된다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무공해 식품들을 우선 구해 먹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만 관심을 가질 뿐 이것을 담아놓고 먹는 그릇들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어 참으로 안타깝다. 말하자면 어렵게 구한 무공해 건강식품들을 유공해 그릇에 담아 놓고 먹는데, 이는 무공해를 유공해성으로 바꿔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지혜롭게 무공해 그릇을 사용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옻칠기 그릇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옻나무에서 채취한 칠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옻칠엔 칠산(일명 :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 건조 후에도 스스로 소독 성분을 발산한다. 이 때문에 옻칠기에 음식을 담아 먹으면 자연스럽게 소독, 멸균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실제 실험 결과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유리컵과 옻칠컵에 우유를 담아 놓고 상하는 시간을 보면 큰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실험 결과 상하는 속도가 유리컵은 4시간, 옻칠컵은 10시간이 걸렸다. 이는 옻칠의 항균 효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유서 깊은 사찰일수록 옻칠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루대’다. 스님들이 식사후 ‘바루대’를 씻을 때 세제를 쓰지 않고 물로만 씻어도 아무 탈이 없는 것은 옻칠의 항균효과 덕분이다.

특히 일본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일본 식당에 가보고 느낀 점이 많았을 것이다. 일본 식당은 대부분 젓가락, 식기류, 도시락, 찬합 등 음식을 담는 것들은 거의 옻칠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옻칠의 항균효과를 생활속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한사전에 ‘japan’을 찾아보면 내용 중에 ‘옻칠을 하다’란 뜻도 있다. 즉 서양인들은 일본을 칠기의 나라로 알고 그 뜻을 담은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만큼 옻칠을 널리 이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양인에게 옻칠 하면 일본을 떠올릴 정도니까.

유기(일명 놋그릇)와 옹기도 소위 말하는 ‘웰빙그릇(용기)’이다. 유기는 구리 78%와 주석 22%의 비율로 합금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금속 제조 기법의 산물이다. 유기에 음식을 담으면 0-157 식중독균이 없어진다.

옹기는 잿물을 입히지 않고 섭씨 1,160~1,300도에서 구워내는 질그릇을 말한다. 예로부터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 등 발효 식품의 저장용구로 사용되어 온 우리 고유의 식생활용품이다. 옹기에 물을 오랫동안 저장해도 변하지 않는다. 전통 옹기류엔 강산(强酸), 유산균, 초산 등을 스스로 발생하는 자정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옹기 스스로 숨을 쉼으로써 안에 있는 식품들이 발효되면 그 열을 외부로 뿜어주고 외부가 추우면 스스로 열을 내게 해주어 항상 신선한 음식을 제공한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이 즐겨 사용했던 식생활용기들에는 ‘지혜’가 담겨 있다. 편하고 예쁜 것만 찾지 말고 진정한 웰빙생활을 위해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때다.


[경향신문 2005.04.11 18:0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