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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오부자' 대물림 지켜낸 어머니의 힘 (오마이뉴스)
제목 [옹기] '오부자' 대물림 지켜낸 어머니의 힘 (오마이뉴스)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218.39.149.234)
  • 작성일 2005-05-06 23: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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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가마 전통 잇는 여주 '오부자옹기' 가족
  곽교신(iiidaum) 기자
7대째 장작가마에 옹기 굽는 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부자(五父子) 옹기'. 경기도 양평에서 이천 쪽으로 가다가 이포대교를 건너 여주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방송 기초자료 취재차 찾은 지 4년 만에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4년간 오부자 가족에겐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오부자의 아버지 김일만(65) 장인이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영광이 있었고, 그가 옹기를 굽는 140여년 된 옹기가마(이른바 대포가마)도 '민속자료'로 지정돼 그의 집 일대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고시되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오부자옹기'란 이름처럼, 함께 옹기를 만들던 아버지와 아들 4형제가 제각각 흩어져 버린 것이다.

▲ 아들 용호씨와 30여분을 뒤져 찾아낸 오부자 사진. 윗줄 좌로부터 3남 창호, 4남 용호, 2남 정호씨, 아랫줄은 부친 김일만 장인, 장남 성호씨.
4형제, 비록 몸은 흩어졌지만...

'뒷일 보는(옹기를 빚기 전까지 하는 흙일)' 일을 배운 큰아들(성호·43)은 부근에 작은 가마를 짓고 나가 옹기를 굽는 일로 '자기 밥을' 벌고, 둘째(정호·40)는 인천에서 도자기 회사에 다니며 '월급을 타먹고' 산다.

셋째(창호·37)는 원광대에서 도자기 공부를 하며 이론가로서 꿈을 다지고 있다. 창호씨는 4년 전에도 아버지 옹기 작업 전반의 과학적 분석에 뜻이 많았다.

4년 전 방문 때 막 살림을 차렸던 넷째(용호·31)는 아버지와 함께 옹기를 빚고 굽는다. 그의 아내 이지현(27)씨는 아들 둘을 낳은 후 얼마 전부터 다시 물레를 차기 시작하여 옹기 소품을 내놓고 있다.

어렸을 때는 네 형제가 공방에 모여 누가 옹기 백 개를 먼저 채우나 시합도 하면서 기량을 키웠고 다들 장가를 든 지금도 형제 우애는 여전히 깊다. "옹기를 빚고 굽는 힘든 작업을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오로지 깊은 가족애였다"고 막내아들 용호씨는 회고했다.

겉으론 가족분산으로 보이는 이 삶의 방식은 옹기에 대한 4형제의 지조가 변해서가 아니다. 각자 알아서 먹고 살아야만 7대물림 200년 전통의 오부자옹기를 원래 모습대로 지킬 수 있다는, 현실과의 불가피한 타협이다. 네 아들이 한 옹기가마에 다 붙어있으면 "모두 굶기 딱 알맞다"는 것이다.

▲ 열폭풍 전의 고요에 잠긴 옹기가마의 내부.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가마터 주변이 문화재보호구역이다.
ⓒ2005 곽교신
각자 자기 밥을 벌지만 지금도 가마에 불을 넣는 날이면 서로 일정을 조정한다. 불을 넣으면 꼬박 삼일 밤낮을 지키며 장작을 넣어야하는 140년 된 옹기가마에 모여 예전의 오부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장작가마 옹기의 가치를 알게 된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고 기존 단골들이 있어서 예전보다 낫다곤 하지만, 아직도 오부자가 한 가마를 지키기엔 경제적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들은 영원히 가마를 떠나지 않기 위해 잠시 가마 곁을 떠났다. 옹기와 가마를 끔찍이 사랑하기에 떠났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4형제가 다시 모여 옹기를 빚고 굽는 것이며 그러기위해 각자 자리에서 애쓰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옹기가마와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론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곧 알아챌 수 있었다. 140여년을 그 자리에 길게 누워있던 '대포가마'에게 4년이 세월 축에 들기나 하겠는가. 4년을 두고 변할 것이었다면 7대째 대물림을 해오는 동안 김일만 장인 가계에는 변화가 아니라 폭풍이 몰아쳐도 백번은 쳤을 것이다.

시련의 세월, 장작가마를 지켜낸 건 어머니였다

▲ 전통옹기에서만 피는 장꽃. 흰색이 주황색으로 바뀌며 간장이 익고, 끓여서 다시 붓지 않아도 잘 익는다고.
ⓒ2005 곽교신
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불어댄 '기름가마'와 '가스가마'의 위력은 대단했단다. 그런대로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옹기를 빚던 김씨 일가에게 고른 빛깔과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닌 옹기를 다량으로 구워내는 신가마의 '효율적인 생산성'은 치명타였다.

순수하게 장작으로 구워내는 옹기는 문외한이 보아도 그 빛이 확연히 다르다. 한 불에서 익힌 옹기가 저마다 색이 다르고, 하나의 옹기에서도 이 쪽 저 쪽의 빛이 다르며 익으면서 모양이 약간씩 비틀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외형으로만 승부하자면 장작가마 옹기로 가스가마 옹기의 쪽 고른 몸매를 당해내기란 애당초 어려웠다.

경제성도 많이 뒤떨어져서 백 개를 넣어 사십 개를 건질 요량으로 불을 때는 것이 장작가마지만, 가스가마는 100%까지도 회수율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어쨌든, 손에 물 묻은 조강지처를 버리고 화장품 냄새 진한 샛여자에게 눈을 돌리듯 소비자들은 장작가마 옹기를 외면했다. 팔리지 않은 옹기는 마당에 쌓이더니 불과 2년 새 6천여 만 원의 빚이 쌓였다.

안 팔리고 쌓이는 옹기와 늘어가는 빚을 보다 못한 김일만씨는 네 아들과 아내를 불러 앉히고, "우리도 가스가마를 하든가 아니면 옹기를 작파하고 차라리 품을 팔자"고 했단다. '오부자가 막노동판에서 품을 팔면 지금보다 낫다'는 권유는 이미 많이 들어온 터였다.

▲ 옹기를 지킨 여자 신종애(63)씨.
ⓒ2005 곽교신
그러나 김 장인의 이런 제의에 "아들 넷을 데리고 집을 나가서 가스가마를 짓든 노가다를 뛰든 맘대로 하라. 여기선 절대로 기름이나 가스를 못 땐다. 난 혼자서 여길 지키겠다"며 말리고 나선 것은 아내 신종애씨였다. 용호씨는 "오부자옹기 가마는 어머니가 지킨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신종애씨에게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 왜 장작가마를 고집했냐고 물으니, "우리 전통옹기만한 그릇은 세상에 없잖아요. 우리라도 지켜야지요"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하지만 시련은 이어졌다. 밤새 번개가 치던 어느 날, 전선으로 벼락이 타고 들어와 공방과 살림집이 순식간에 다 타버렸다. 화재를 시작으로 자잘한 흉사가 잦더니 신종애씨가 자궁암으로 대수술을 받고 사경을 헤매기 시작한 것.

그것이 마지막 시험이었는지 신씨의 퇴원 후 이상하게 일이 잘 풀려 빚을 다 갚고 오부자옹기도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가마를 빨리 회전시키려고 화기가 덜 빠진 가마에 들어가 옹기를 꺼내다가 온 몸이 익을 정도의 화상을 입도록 힘들기도 했지만, 그런 좋은 날이 또 올 것을 용호씨는 굳게 믿는다고.

시씨의 자궁적출 수술이 있던 날은 가마에 옹기를 가득 채우고 불을 지펴야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김일만 장인으로부터 아무 소식이 없어 아들이 수소문 끝에 불을 안 넣느냐고 묻자, 옹기라면 만사 제치던 김 장인은 "네 엄마가 저 지경인데 옹기고 뭐고 니들 맘대로 하라" 하셨다 한다.

그 날 이후 김일만 장인은 아내를 "애기"라 부른단다. 재미는커녕 말도 없던 김씨였지만, 대수술로 자궁을 들어내고 사선을 넘어 집에 돌아온 아내가 그의 눈엔 새로 얻은 아기로 보인다고 한단다.

▲ 안살림을 하면서 옹기 소품을 내고 있는 젊은 엄마 이지현씨.
ⓒ2005 곽교신
신종애씨는 "애기"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막내아들의 말을 들은 기자가, 남편께서 마음속에서 그렇게 부르고 싶어 그러시는 것 같으니 못들은 척 그저 잠자코 계시라고 넌지시 말을 건네자 툇마루 앞 먼 산을 보는 신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지금 시부모를 모시는 막내며느리 이지현씨의 옹기 사랑도 시어머니 못지않다. 이씨는 "앞날에 대한 아무 걱정도 안 한다"는 한 마디로 옹기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

옹기가 좋아 경북 구미에서 옹기를 배우러 왔다가 눌러앉아 5살, 4살 두 아들의 엄마가 된 이씨는 앞으로 옹기를 지킬 또 다른 '오부자 가의 든든한 여자'로 보였다.

8대로 이어지는 전통옹기라는 신앙

오부자옹기를 신앙처럼 지킨 신종애씨는 당뇨를 비롯해 몸이 여기저기 안 좋지만, 팔리지 않아도 마당에 옹기가 그득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김일만 장인도 "네 엄마는 옹기만 많으면 아프지도 않다"고 말한다니 타고난 옹기사랑 병이다.

"옹기만 보면 불룩한 옹기처럼 내 배도 부르다"는 신종애씨에게 왜 그리 옹기가 좋으냐고 물으니, "세상에 옹기처럼 좋은 것이 또 있느냐"는 다소 엉뚱한 답을 한다. 그러나 곱씹어볼수록 어떤 미사여구보다 간결하고 정확한 말이다.

▲ 오부자옹기의 8대를 이어갈 김인건(5)군. 물레 차는 솜씨가 나이답지 않게 능숙하다.
ⓒ2005 곽교신
이제 오부자옹기는 네 아들의 2세들이 8대째 대물림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가장 어린 8대인, 막내 용호씨의 장남 인건(5)이는 벌써부터 타고난 끼를 보였다.

어느 날 보니 혼자 발물레를 차며 흙을 만지더라는 이지현씨의 말처럼, 인건이는 천방지축놀다가도 물레에 앉자 순식간에 진지해지면서 아무도 가르치거나 시키지 않았다는 발물레를 능숙하게 찼다.

오부자옹기의 장작가마 옹기는 손끝 기술로 흙을 빚은 단순한 그릇이 아니었다. 배우고 익힌 옛 방식 그대로 흙을 빚고 사랑이라는 가마에 구워낸 하나의 '신앙'이었다.
2005/05/03 오전 10:44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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